갑돌이와 돌직구 > 목회칼럼

본문 바로가기


목회칼럼

  Home > 말씀과찬양 > 목회칼럼


 

갑돌이와 돌직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14-04-13 18:49 댓글0건

본문

갑돌이와 돌직구
- 2014. 4. 13 기독교호남신문 

여주 남한강변에 갑돌이와 갑순이 테마파크가 있다. 여주시에 따르면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랫말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1870년대, 여주 고을에 박돌이라는 총각과 갑순이라는 처녀가 살았는데 이 둘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실존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유성기 음반으로 녹음된 민요, ‘박돌이와 갑순이’ 노랫말은 이렇다. 한 마을에 살던 박돌이와 갑순이는 서로를 연모했다. 하지만 마음뿐. 둘은 모르는 체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갑순이가 시집을 갔다. 박돌이가 그리운 갑순이는 가마 속에서 울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했다. 박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들었다. 박돌이는 그날 밤, 하늘을 보고 웃었지만 역시 마음은 아팠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그까짓 년” 하면서 아무 일 없듯 했다. 

말로 고백하지 않은 애정(愛情)이 애증(愛憎)으로 바뀐 것이다. 말은 해야 말이고 사랑은 고백해야 사랑이다. 마음의 생각은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입은 말하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딱히 말을 하라고 권하기가 무섭다. 돌직구 때문이다. 돌직구는 돌처럼 묵직하고 곧게 던지는 공이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느낌은 고려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내뱉는 말로 그 뜻이 전용됐다. 

돌직구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은 뒤로 호박씨 까는 스타일은 질색한다. “안 그런 척 했더래요” 식의 갑돌이는 애들 말로 완전 비호감이다. 그런 내숭이 있다면 천연기념물이다. 솔직함이 미덕이다.

그러나 솔직함도 좋지만 아무래도 돌직구는 위험하다. 돌직구에 맞으면 아프다.  ‘그 얼굴에 공부도 못하면 희망이 없다’는 돌직구는 듣는 아이에게 상처다. 갑돌이는 자기 안에 상처를 품지만 돌직구는 듣는 이가 상처를 품게 한다. 돌직구는 애증(愛憎)을 넘어 증오(憎惡)를 쌓는다. 

교회 안에도 두 파가 있다. 갑돌이파는 좀체 말을 안 한다. 속에 ‘꿍’하고 담아둔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몰라주니 애증만 쌓인다. 반대로 돌직구파는 나오는 대로 말을 퍼붓는다. 상대의 상처에서는 증오가 싹튼다. 둘 다 바른 언어생활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갑돌이파와 돌직구파 사이에 있다. 갑돌이가 되지 말고 할 말을 하라. 하지만 돌직구는 아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손에 든 돌직구는 내려놓으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61136 광주광역시 북구 문화소통로315번길 11(문흥동267-5) / TEL. 062-269-9101~2
Fax. 062-269-9104 / 목양실 062-269-9103 / 목사관 062-269-9105 / E-mail. webmaster@siminch.com

Copyright © siminch.com All rights reserved.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