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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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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14-08-16 15:5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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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21』2014년 8월호(국민일보사 발행)

한국교회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말은 이제 익숙하다.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위기론이 마치 우후죽순(雨後竹筍)이다. 위기라는 말을 계속 듣다보면 어느새 위기의식조차 사라지게 되는가? 그 정도 설레발이면 한국교회의 표정이 사뭇 심각할 법도 한데 겉으로는 천하태평이다. 이것이 주님 주신 평안은 아닐 터. 그 평안 밑에 도사리고 있는 위기의 원인 몇 가지를 추슬러본다. 차려진 위기론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셈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나아갈 작은 길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세상속의 섬, 한국교회]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다. 땅 끝은 세상이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세상에 교회가 세워졌다. 태생부터 교회는 ‘세상 속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는 ‘세상의 교회’는 아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이것이 교회와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이 긴장이 균형 잡힐 때 교회는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된다. 

문제는 긴장의 균형이 깨질 때. 이 균형이 깨질 때 교회는 교권주의나 세속주의에 빠졌다.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교회대로 신음하고 세상은 세상대로 힘들어한다. 세상 속에서 짠 맛을 잃은 한국교회는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마 5:13)이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 속에 있지 못하는 한국교회는 세상의 섬이 되고 있다. 세상은 더 이상 교회에 관심(關心)하지 않는다. 교회의 영향도 거부한다. 심하게는 교회를 세상에서 밀어내려고 한다. 교회가 세상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위기다. 

위기는 수치가 보여준다. 아시아인재미래연구소 최윤식 소장은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2050년쯤 되면 300만∼4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대로 30년만 가면 한국교회는 반 토막이다.

[지도자들의 책임]
가장 먼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사람은 교회 지도자들이다. 어느 공동체든 문제의 제1원인은 항상 지도자에게 있지 않던가? 그 책임이 포괄적이든 아니면 실제적이든 상관없다. 지금 그 공동체의 모습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만든 산물이다. 한국교회도 그렇다. 지금 한국교회가 당한 위기의 책임은 1차적으로 지도자들의 몫이다.  

특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분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없이 갈라진 교단은 혹 교권이라는 사욕(私慾)에 진리라는 겉옷을 입혀 만들어진 산물이 아닌가? 진리 수호를 외치던 때가 얼마 되지 않은데 지금은 통합이 대세다. 세월이 약인가? 통합하되 누가 옳고 그른지는 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옳고 그름은 큰 문제가 아니었음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분열이 이제 통합을 추구한다. 진리와 상관없는 분열은 얼마든지 통합할 수 있다. 정말 잘못된 분열이라면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 맞겠다. 그러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통합하는 일은 필시 본래가 아닌 제3의 모습을 만들어 낼 것이다. 본래 모습으로의 통합(a→ab′→a)이 아니라 제3의 모습으로의 통합(a→ab′→c)이라면 문제다. 심지어 타종교까지와 통합을 운운하는 것은 분열이라는 원죄가 치러야 하는 삯이다. 잘못된 분열이 잘못된 통합의 사생아를 낳고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바울은 후배 목회자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딤후 2:15)하라고 주문했다. ‘진리의 말씀’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분열과 통합을 가져왔으리라. 그래서 이 말씀은 지극히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 또한 이 말씀이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어야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도 분열과 통합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도자들의 선택에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을 만들었듯이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한국교회를 만들 것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교회 안의 분쟁]
대그룹으로서의 한국교회가 분열과 통합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면 소그룹으로서의 개(個)교회는 분쟁으로 찢기고 있다. 어느 세미나에서 귀동냥하기는, 이래저래 지금 분쟁 중인 한국교회는 1천여 개나 된다. 그것도 규모가 있다는 교회만 해서. 

분쟁이 크든 작든 분쟁하는 교회는 아프다. 교회를 떠나는 자가 생기고 어떤 이는 믿음을 떠난다. 세상법이 교회법을 판단하고 세상 사람들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교회에 들어온다. 세상은 교회의 다툼을 말릴 책임이 있는 어른처럼 군림한다. 

교회의 리더십이 교체 될 때에도 분쟁이 있다. 1세대 내지 1.5세대 리더십이 물러나고 그 다음 세대로 교회 리더십이 교체되는 중 분쟁을 겪지 않는 교회는 별로 없다. 지금도 내로라할만한 교회들이 담임목사 교체 과정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직 리더십 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교회는 잠재적 분쟁교회일 뿐이다. 

물론 교회는 분쟁의 폐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교회가 분쟁하는 이유는 주도권(hegemony) 때문이다. 주도권이라는 역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에 오른 사람을 웬만해선 말릴 수 없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라면 이들은 성경도 초월한다. 교회를 제 뜻대로 쥐락펴락하려는 안중에는 하나님도 없다. 게다가 이 틈새를 노려 교회 하나 차려보려는 ‘양 도둑’과 정치 세력까지 끼어들면 분쟁은 가관이 된다. 이들에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분쟁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교회 분쟁에서 승자란 없다. 유일한 승자는 사탄이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사탄의 무기는 분쟁이다. 지금도 사탄은 교회마다 분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의 굴뚝에서는 분쟁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분쟁의 연기가 한국교회를 온통 뒤덮기 전에 한국교회는 깨달아야 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의 몸이다(엡 1:22-23).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다. 주인님이다. 원래 주도권은 주인님께 속한 것이 아니던가? 성경적 교회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속주의의 위협]
분열과 통합, 분쟁이 교권주의의 산물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세속주의가 있다. 교회 밖,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교회 안에서 세속주의로 나타났다.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할 교회가 세상에 속해 간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담을 무너뜨리고 세속을 향한 문을 열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교회에 들어왔고 그것이 진리 행세를 한다. 교회와 세속이 구별이 없게 된다.

성경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일이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평가 받는다. 믿음으로 해야 할 일도 절차적 민주성과 합리성 앞에 좌절된다. 다수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우선한다. 기도 없이 일을 추진하고 교회의 나아갈 방향은 계산기가 결정한다. 계산기가 신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목회는 세상적인 성공의 잣대로 평가받는다. 성도들의 성공도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된다.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성도들도 그렇게 산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산다. 나중엔 사는 대로 믿을 것이다. 그러면 세속주의의 완승이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 속에 있되 세상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믿음 위에 세워졌다. 믿음의 근거는 말씀이다. 말씀이 교회의 기초이고 기준이다. 세속주의를 말씀 앞에 무릎 꿇게 해야 한다. 점점 짙게 드리우는 세속주의의 그림자를 교회에서 걷어내야 한다.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힘은 말씀이다. 한국교회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기치로 돌아가야 할 이유다.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는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다. 세상과의 동화(assimilation)가 아니라 세상의 변혁(reformation)이 교회의 사명이다. 세속주의의 위협에서 순결을 지키는 교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
역사적 교회는 항상 시대 상황과 교감한다. 교회는 시간 속에 있기에 한국교회의 위기는 시대와 밀접하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급성장하던 때는 이른바 ‘십자가만 달아도’ 교회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배당 지어놓고 모셔도 모이지 않는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시대변화를 주도하는 요인 중 인구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60년대의 3·3·35원칙(3살 터울, 3자녀, 35세 이전 출산)은 70년대 들어 2자녀, 80년대엔 1자녀로 바뀌었지만 이젠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다. OECD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2년 뒤인 2036년엔 노인 1명을 부양해야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1.96명이다. 지금 5명이 하는 것을 2명이 해야 한다. 

절대인구 자체도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까지 태어난 출생아를 토대로 12월 치를 추산, 합산한 결과 2013년 출산율은 1.18명이었다. 2012년의 1.3명보다도 하락했다. 

인구 변화의 영향은 당장 주일학교에 파급됐다. 출산율이 떨어지니 주일학생도 줄어든다. 절대교인수도 줄 것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노인부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헌금수입은 감소할 것이다. 인구감소추세로만 본다면 지금만이 아니라 미래의 한국교회 전망도 어둡다. 

지금 우리 사회의 아젠다(agenda)는 복지다. 미래도 그럴 것이다. 서구도 그랬다. 한국교회는 역사 속에서 명멸하는 서구 교회를 보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복지라는 주제는 어떻든 교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국교회가 할 일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 속에 있는’ 교회다. 교회가 시대와 사회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며 사회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세상 속에 있는 한 가지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급변하는 미래 속에서도 한국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에 위협을 가하는 요인은 부지기수(不知其數)다. 그 모든 요인을 다 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보는 한국교회의 눈이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 하지 않던가? 위기에는 기회가 함께 있다. 그 기회를 찾아야 교회가 세상속의 섬이 되지 않는다. 그 기회를 선용하면 한국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교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이 한국교회에게 골든타임(Golden Ti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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