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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魍魎)와 두꺼비(蟾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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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16-11-02 18:3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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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魍魎)와 두꺼비(蟾蜍)
- 2016. 11. 2 기독교호남신문

망량견섬이곡(魍魎見蟾而哭)이라는 말이 있다. 도깨비는 두꺼비를 보면 운다는 뜻이다. 망량(魍魎)은 도깨비를 말하고 섬(蟾)은 곧 섬여(蟾蜍)로 두꺼비를 말한다. 

조선후기의 문인 강이천(姜彝天, 1769-1801)은 그의 문집『중암고(重菴稿)』에서 사람이 경계해야 할 3가지를 말했다. 이른바 3경(三警)이 그것인데, 그 중 하나가 욕망이다. 도깨비는 두꺼비를 보면 운다는 말은 욕망의 힘을 설명하는 예화인 셈이다.

도깨비는 그 식성 상 두꺼비를 좋아한다. 그러나 도깨비는 두꺼비를 먹으면 죽는다. 먹고 싶은 욕망과 죽지 않고 싶은 욕망이 도깨비 안에서 충돌한다. 어떻게 할까? 도깨비는 욕망을 따라 두꺼비를 먹는다. 죽을 줄 알고도 먹는다. 그래서 도깨비는 두꺼비를 보면 운다. 

죽을 줄 알면서도 욕망을 따르는 도깨비의 우매한 선택! 강이천은 이를 인간사(人間事)에서 발견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눈앞의 욕망을 집어먹는 인간은 도깨비와 다르지 않다. 

아담도 그랬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계하셨다. 하지만 아담은 먹었다. 열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해 보였다. 욕망이다. 아담은 죽는 줄 알면서도 욕망을 따라 사는 인간의 전형(典型)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인 우리도 같은 줄에 서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었다. 죽음도 불사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어떻게든 멈춰 세워보자는 취지다. 다행히 한 달여 만에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무던히도 참는다는 뜻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인내를 욕망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강이천의 처방은 맞아 보인다. 막외어욕 막선어인(莫畏於慾 莫善於忍), 욕망보다 무서운 것이 없고 인내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욕망은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참는 것은 누르는 것이지 없애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두꺼비를 보고 우는 도깨비들이 여전히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욕망에 대한 진정한 답은 하나뿐이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제도의 구비보다 내면의 변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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